밤이 깊어지면 모든 게 조금씩 가라앉는다

밤이 깊어지면 모든 게 조금씩 가라앉는다  
창밖 불빛은 희미하게 깜빡이고  
거리의 소리도 어느새 멀어진다  
방 안 공기도 고요하게 머물고  
나는 가만히 앉아 오늘을 돌아본다

별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눈을 뜨고  
정해진 일상을 따라 움직이고  
크게 웃지도, 울지도 않으면서  
하루가 자연스레 흘러갔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만한 사건도 없고  
SNS에 올릴 만한 특별한 장면도 없었다

예전엔 이런 날이 아쉽게 느껴지곤 했다  
뭔가 하나쯤 이뤄야 할 것 같고  
의미 있는 하루였다는 걸 증명해야 할 것 같아서  
괜히 내 자신을 조급하게 만들었던 적이 많았다  
남들은 다 무언가 이뤄가는 것 같고  
나만 멈춰 있는 것 같아서

하지만 요즘은 그런 마음이 조금씩 옅어진다  
크게 특별하지 않아도  
그저 하루를 무사히 마치고  
내 자리에서 묵묵히 견디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조금씩 알게 된다

생각해보면  
삶이라는 게  
언제나 대단한 사건들로만 채워지진 않는다  
대부분은 눈에 잘 띄지 않는 평범한 날들이고  
그 속에서 내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내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조용히 배워가고 있다

오늘도 그런 하루였다  
출근길에 불어온 바람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  
점심시간에 듣던 노래 한 곡  
누군가 스치듯 건넨 인사  
소소한 순간들이 쌓여  
하루가 만들어졌다

크게 기억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런 순간들이  
조용히 내 마음 한켠에 머물러  
내일을 살아갈 힘이 된다

그래서 이제는  
굳이 더 특별해지려고 애쓰지 않는다  
누구보다 빠르게 나아가지 않아도  
내 속도로 하루를 잘 견뎌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불을 끄기 전  
잠시 창문을 열어본다  
밤공기가 차갑게 스치고  
멀리서 바람 소리만 들린다  
모든 게 잠잠한 시간  
그 속에서 나도 천천히 숨을 고른다

내일도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비슷한 길, 비슷한 시간  
크게 기대할 것도 없겠지만  
그 하루 속에도  
나만 아는 작은 순간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조용히 눈을 감는다  
아무 일 없던 오늘이  
결국은 내 삶의 또 하나의 조각이 되어  
천천히 이어지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되뇌인다

그렇게 또 하나의 밤이  
말없이 지나간다  
소란함 없이  
조용히, 천천히  
내일로 이어진다